우주는 어두웠으나, 지구는 푸르렀다.
작은 발걸음은, 위대한 도약이 되었고.
셋.
둘.
하나.
속도, 궤도, 방향. 안정합니다.
도킹 준비가 끝났습니다.
진입을 시도합니다.
3m.
2m.
1m.
울리는 환호성. 반가워 하는 목소리.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로 통일된 언어로 사람들은 인사를 주고 받았고. 오래지 않아 메이블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멀어져가는 잔해들. 버티지 못하고 터져가는 것들, 비명소리. 공기가 없는 공간에선 소리가 들리지 못할텐데.
그러니까, 메이블은 떠올렸다. 바보 같아.
-
메이블은 게임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만큼 책을 좋아했다. 이는 함께 생활하는 새뮤얼의 입장에선 모를리 없는 사실이었다. 도서는 대개 두 종류로 나뉘었는데, 그녀의 전공과 관련한 컴퓨터 서적을 제외하면- 그 나머지는 소설이었다. 특히 공상 과학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메이블 애쉴리와 도서 취향이 겹치는 것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새뮤얼은 한때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한 사람이었고. 당시의 배우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도서는 좋은 교본이 되기도 했다. 때문에 두 사람은, -두 사람과 하나의 강아지가 사는- 집에서 메트로로 세 정거장 즈음 되는 곳의 서점에서 데이트를 하는 날이 종종 있었다. 메이블이 어릴 적부터 드나들었다던 서점은 새 것과 오래된 것이 혼재한 종이 냄새가 났다. 적당히 선선한 공기. 이따금 보이는 어두운 구석은 새뮤얼에게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장소였다.
가게의 주인은 제법 나이 든 남자였다. 물론, 그래봤자 새뮤얼에 견줄 바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하얗게 샌 수염을 멋들어지게 가꾼 신사는 서점의 풍경과 제법 잘 어울렸다.
" 어서 오렴, 꼬마 아가씨. 오, 이젠 숙녀라고 불러주는 편이 낫겠구나. "
" 편히 불러도 괜찮아요. 음. 새 책 있어요? "
" 어디 보자. 내가 기억력이 예전같지 않아서. 기다려 주겠니? "
제 짝이 가벼운 스몰 토크를 주고 받는 사이, 새뮤얼의 시선은 내부를 향했다. 이어지는 걸음. 서점의 내부는 아주 넓지 않아, 어느 거리에서나 메이가 보일 위치였기에 자리를 옮기는 걸 그다지 주저하지 않았다. 과거가 그립나? 마냥 반가운 것은 아니지만, 그 또한 지성과 감성을 가진 존재였기에 새뮤얼은 어느 편린들을 더듬었다. 생물학적 변이가 이뤄지지 않은 먼 과거, 한 때 그가 아이였을 시절에도 존재한 구닥다리들. 아직도 이런 걸 읽나. 새뮤얼은 저자를 비웃기라도 하듯 어깨를 으쓱인다. 책의 결들을 따라 쓸어가다보면- 잘 제본된 것들과 달리 다소 거친 느낌이 드는 것들이 있다.
그게 거슬려선, 꺼내어 보면. 아. 온전히 같은 것은 아니나, 어느 망해버린 극단에서 돌고돌아 흘러들어온 대본집이 눈에 띈다. 잊혀진 무명의 배우가 왼손잡이였는지, 위로 넘기는 형태의 것은 유독 왼쪽 아래가 헤진 채다. 잠시 추억한다. 필체도, 대본의 내용도 완전히 다른 것이지만 종이에 새겨진 마른 잉크에선 꿈을 쫓으려 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이름이 뭐지? 언젠가의 꿈을, 비극을 겪고. 누구도 추억하지 않는 무명 배우의 이름은 그저 이니셜로 'B. E.'. 두 개의 알파벳이 되어 남아있을 뿐이었다. 달갑지 않군.
" 샘. "
" 오, 메이. "
도로 책꽂이에 낡은 종이 묶음을 비집어 넣는다. 어디보자. 내가 웃고 있던가? 새뮤얼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말한다.
" 파트너를 쏙 빼두고서 아주 즐거워 보이던 걸. 응? "
" 그냥. 일일이 찾아보는 것보단, 물어보는 편이 빠르잖아. "
도르륵. 조금 전 새뮤얼이 꽂아놓은 대본집에 메이블의 시선이 따라 옮겨간다. 노트? 다 쓴 것을 이런 곳에서 팔리는 없지만. 이어지는 새뮤얼의 목소리에 메이블의 주의도 자연스레 흘러간다.
" 산다던 책은? "
" 조금 무거워서. 나가기 전에 챙기기로 했어. "
메이블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뭐 사게? 하고 메이블은 되돌려 물으면, 새뮤얼은 흘긋. 가볍게 돌린 시선으로 낯설지 않은 책을 집어든다.
" 《오만과 편견》? ... 고전이네. "
연애 소설? 그런 취향이야? ... 메이블은 떠올렸다. 아닌 것 같은데. 물론 아무리 자신이라고 해도 새뮤얼의 모든 것을 알고, 궤뚫어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혹은 누구나 변덕스럽게 굴고 싶은 날이 있기도 하고 말이다.
" 메이가 잠들기 전에 읽어주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지. "
거짓말. 메이블은 눈을 가늘게 뜬다. 물론 그 말에 새뮤얼은 메이, 설마 내가 너를 두고 거짓말을 하겠니? 그런 반응은 좀 서글픈데- 따위의 말들을 건넨다. 가볍게 티키타카를 반복하며 떠들다 보면, 약간의 시간이 흘러 어느새 서점을 나설 무렵이다. 평소보다 조금 많은 양의 책들에 메이블이 난처해 할 즈음, 새뮤얼이 가볍게 그것을 챙겨든다. 민망하지만서도, 그럴 때마다 메이블은 새뮤얼에게 고맙다는 말을 잊지않는다. 메이블도 안다. 안면에 감정을 드러내기 어려워 할 수록, 소리를 내어 마음을 전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값을 치루고 나가려던 찰나, 새뮤얼의 이목이 끌리는 곳이 있다. 이는 직감적이었고, 어느샌가 의식하지 않아도 닿게 되는 것이었기에- 어느 한편으론 노골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노인은 웃는다.
" 짐작한 것이 맞을 걸세. "
못지 않게 연륜이 쌓인 가게 주인이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인다. 카운터 가까이 놓인 나무 기둥 한 켠. 그 위로 빼곡히 놓인 사진들 속에서 새뮤얼은 서점에서 가장 귀한 것을 찾았다.
-
" 샘. "
우주로 가는 거, 어떻게 생각해? 메이블이 물었다. 그것도 서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젤라또를 하나씩 든 채로 말이다. 밑도 끝도 없이 던져진 질문에 새뮤얼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메이, 넌 무슨 우주로 간다는 말을 젤라또 먹을 때 하니? 그것도 초콜릿 젤라또를 입가에 조금 묻히고서 말이야. 메이블이 뭐라고 했더라.
' 챙겨갈 수 있는 게 있으려나. 공허하고 넓고. 그래도 조금 즐거울 것 같기도 해. '
잔잔하게 이어지는 목소리들은, 이상하리 만큼 파동이 커져버려서. 답지 않게 머리가, 위가, 장들이 꼬여 울렁이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
언제였더라.
그다지 기억하지 않아도 될 정도지만, 새뮤얼은 간만의 기억을 머리에서 끄집어 냈다. 미지에서 이지(已知)의 세계로 돌아오게 되고, 검진을 마친 후- 인간 사이에 섞이길 희망한 나디르들에겐 몇가지 교육이 진행되었다. 사회화 훈련 등의 명목으로 진행된 몇 번의 강의의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그들이 잊혀진 사이 일어난 세계의 큰 흐름들, 윤리 의식, 생활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능력치들.
그 중 떠올린 건, 헥사곤의 연구원이 흘러 넘긴 빔 프로젝터의 내용 한 켠의 내용이었다.
' 인간의 과학 기술은 다양한 영역에서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놀랍게도, 지구의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까지도요. '
' 푸르게 빛나는 행성. 이 행성이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곳이죠. '
' 그 바깥엔, 해와 달, 별. 나디우렘 이상으로 알아내지 못한 비밀들이 존재하는 '우주'의 영역이 있습니다. '
' 인류 최초의 우주인은 유리 가가린으로... '
' 달에 최초로 착륙한 우주인은 닐 암스트롱... '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다. 분명 그랬는데.
새뮤얼은 메이블이 잠든 시각, 그의 거미줄에 누워 미간을 찌푸렸다. 화면의 밝기를 잔뜩 낮춘 화면, 처음 기기를 사용할 적에 비하면 조금은 빨라진 타속으로 스마트폰의 화면을 두드렸다.
└ 메이블 애쉴리
└ 우주 여행
└ 메이블 애쉴리 우주
└ 엔지니어 우주 프로젝트
└ 메이블 애쉴리 프로젝트
이건가? 새뮤얼은 링크 하나를 누른다. [OOO의 새로운 프로젝트, 향후 진행 계획은?] 제목부터 제법 그럴 듯 하지 않나. 내용은, 어디보자. [... 미국 OOO 기업 관계자는 내부 회의를 통해 외부 인재에 대한 협력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외부 영입 인재에 대한 정보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업계에선 유력한 후보로 ... 와 ... , 영국의 메이블 애쉴리, ... 등을 지목했습니다. ...]
... 빌어먹을 기자들 같으니.
예나 지금이나 기자라는 존재들은 새뮤얼의 인생에서 도움이 되는 법이 없었다. 결국 화면을 금방 꺼버린다. 전자기기들이 친숙해지지 않을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그 사이 알아낸 정보들이라곤, 우주에선 조금도 숨을 쉬지 못한다거나. 맨 몸으로 우주에 나서면 터져버린다거나. 우주에 다녀온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질환, 지구에서 생활하기 까지 필요한 재활 훈련들. 사고. 그런 것들.
위험한 곳에 자신을 두고 떠나버리겠다고.
고작 '인류의 발전' 따위 때문에?
나를 두고.
나의. -우리의 순간에 파멸을 끌고 올 생각이야? 메이블 애쉴리.
그래서였나. 오늘 책의 양이 유독 많았던 것에 대해 말이다.
반 즈음 바닐라 젤라또를 녹이며 돌아온 새뮤얼의 시야에 닿았던 메이블 품 속의 책들.
오늘은 유독 우주에 대한 책들이 많았다. 예습이라도 할 요량인지, 천진난만한 -실은 평소와 다름 없는- 표정으로 책들을 정리하기 바빴으니. 메이블은 아직 자고 있을테니, 아. 저택, 그래. 어쩌면 그 곳이라면, ... 이어지는 생각들. 아니, 아니군. 아니다. 메이블은 그리 허술한 인물이 아니니, 분명 생각이 있을테니까. 둘 사이의 신뢰가 겨우내 새뮤얼 에반스의 정신을 붙들었다.
숨을 고른다. 그나마 지금의 심경을 달래줄 어느 것.
작고 낡은 사진 한 장. 작은 소녀가 한참이나 두꺼운 책을 무릎위로 얹은 채 책을 읽고 있다. 어깨 즈음을 간질이는, 약하게 곱슬대는 밝은 머리카락. 흥미가 없는 듯, 그럼에도 열망하는 작은 불꽃이 핀 눈동자가 바쁘다. 입에 물려진 막대 사탕. 곁에 놓인 포장지를 보니- 이제는 시장에 더 나오지 않게 된 브랜드의 것이다.
물론, 사진은 허락받지 않았다.
기둥에 다른 사진도 많으니 말이야.
-
오늘은 영화를 보기로 했다.
메이블은 이 시간을 제법 좋아하기도 했고, 새뮤얼 또한 그랬다. 중요한 건 두 사람이 몸을 맞대어 보낼 수 있는 여가 시간 중 하나였으므로, 이에 의의가 더 컸다. 영화는 그때그때 다르다. 하루는 무성 영화, 또 하루는 흑백의 영화, 또 어떤 날은 멜로, 액션. 오늘의 영화는 메이블이 고른 것이다. 평소라면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별점을 하나, 아니 두 개를 깎고 싶은 날이었다.
" ... 메이. 이 영화를 고른 이유가 뭐야? "
" 재미있을 것 같아서? 개봉한 지 20년 즈음 된 거라, 고증이나 연출은 많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
가끔은 옛날 영화도 좋잖아. 네 입장에선 최신이려나? 메이블은 가벼운 농담을 던진다.
내용은 이렇다. 9671년 후의 미래, 우주 탐사 과정에서 일어난 고난과 역경, 생존, 외계인과의 러브스토리... ...에 대한 이야기인데. 메이블의 평가는 그렇다. 소재만 그럴 듯한 B급 영화라고.
어쨌든 선선한 바람이 살랑이는 에어컨 아래. 메이블은 새뮤얼의 품안에서 갓 구워 달콤하고 바삭한 캐러멜 팝콘을 와작인다. 하나씩 새뮤얼의 입 속에 넣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다 펑, 하고 주인공 일행의 우주선이 터지는 소리에 몸이 파르르 떨리고 나면. 데구르르 굴러간 팝콘 알을 대니가 와작거린다. 안돼, 너무 달단 말이야. 안돼. 네 꺼 먹어. 메이블은 대니에게 오리고기가 붙은 개껌 간식을 대신 물려준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새뮤얼은 좀처럼 영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시선은 메이블을 향한 채였고. 비로소 화면이 검은 색으로 바뀌고 나서야, 메이블은 그 시선을 느낀다.
" ... 영화 재미없었어? "
" 솔직히 말하자면, 메이. "
검게 칠해진 손끝이, 간질거리는 앞머리 사이로 비집어 들어가 메이블의 이마를 톡톡 누른다.
" 오늘의 영화 고르는 센스는, 프랑스에 살고 있는 쥐가 만든 요리 보다도 못했어. "
좋은 걸까, 나쁜 걸까. -물론 새뮤얼은 영화 《라따뚜이》를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최저라는 표현이었겠지만.- 메이블은 다음에 볼 영화의 목록으로, 순순히 《라따뚜이》 를 넣어두었다.
" 응. 나도 재미없었어. 어째, 설명만 장황했네. "
별로야. 그런 이야기를 하며 메이블은 조금 남은 캐러멜 팝콘을 씹는다. 사실 캐러멜 팝콘이라기엔 그냥 팝콘에 가깝다. 이유라면 캐러멜이 잔뜩 묻은 것들을 고르고 골라, 영화의 중반부가 될 즈음이 되도록 먼저 골라 먹었기 때문이다. 담백한 팝콘의 맛에 그릇을 밀어 테이블에 올려둘 즈음.
" 메이. "
" 응. "
" 정말 갈거야? "
" 어딜 말이야? "
모르는 척이라니. 그러나 새뮤얼 에반스는 그 자신이 자부하길 '신사적'인 축에 속하는 사람이었고, 그만큼 메이블 애쉴리 또한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 우주, 말이야. 조금 전에도 보았잖니? "
새뮤얼은 설명했다. 우주선이 망가질지도 모른다거나, 우주의 이름 모를 생물체가 순진한... 메이블을 삼킬지도 모르고, 영영 우주를 멤돌지도 모른다는, 어쨌든 기나긴 이야기들을. 새뮤얼의 말에 메이블의 표정은 묘하다.
" ... 그러니까. 내가, 우주에 간다고? "
프스스. 좀처럼 보이지 않던 미소가 터져나온다. 웃는 듯, 아닌 듯. 그러한 표정이었으나, 아마 애쉴리 가의 사람들이나- 새뮤얼이 본 메이블이라면. 확실히도 웃는 낯이었다. 메이블은 자리서 양 팔을 벌린다.
" 새미. 안아줄래? "
메이블을 신뢰한다. 신뢰하고 있지만서도, 어째 마음이 불안하기 짝이 없는 남자는 메이블을 지켜보다가. 결국 누가 채어가기라도 할까 삼키듯 끌어안는다. 진득하게, 하지만 부서지지 않도록. 울걱거리고 올라오려던 것들이, 삼킨 캐러멜들 처럼 서서히 늘어져 흘러내리는 기분이다.
" 새미. 감상은 어때? 그러니까, 재미없는 영화 말고. 나를 안아 본 감상 말이야. "
좋다느니, 그런거 말고 말이다.
어떻냐고?
새로 바꾼 코튼 향의 샴푸. 동그란 뒷통수를 따라 이어지는 곡선, 다다른 목가의 두께는 확실히 두꺼운 것이 아니다. 더듬어 내려가는 척추선. 금이 간 흔적 조차 없는 갈비뼈 안쪽 깊이, 작은 심장이 두근대는 소리가 여전히도 들려오고. 허리, 그 아래. 가득히 품에 안으면서 느낀 것은, 우주가 아닌 단순한 오지에 떨구는 것 만으로도- 오래 버티지 못할. 단련되지 못한 몸뚱이. 탐닉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처음 메이블을 품에 안을 적보다 말캉한 구석이 더해진 것 같다. 살이 조금 쪘나. 생각들을 뒤로하고, 새뮤얼은 입을 열어 느낀 것들을 더듬어 이야기 한다.
" 샘. 그렇게, 말하니까. 너무 적나라한 기분이긴 하지만. 맞아. 네 말대로 건강하긴 하지만, 그닥... 음. "
메이블은 새뮤얼의 품에서 고개를 슬쩍 든다. 복잡한 말은 필요 없으니.
" 어쨌건, 우주에 가기에 적합한 몸은 아니라는 뜻이야. "
객관적 사실 하나.
그리고 또 하나.
" 샘. "
" 내가 널 두고, 멀리 사라져 버릴리 없는 걸. "
언젠가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될 것도 안다. 새뮤얼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말해주는 것이다.
" 내 의지는 널 벗어나지 못해. 그 어느 조각들보다도 단단하게 맞물려서. "
메이블 애쉴리가 가지지 못한 조각을.
새뮤얼 에반스는 가지고 있으므로.
허나 그것을 망가뜨리고 싶을 만큼, 악하지 못해서. 당신도. 나도.
서로의 삶에 조금 더 기대어 나아가고, 의지하고 싶은 것이겠지.
구원이라는 거창한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숨을 쉬고, 기억하고.
의지를 가진 존재는 어떤 미물이라도 온기에 한없이 나약하기에.
메이블 애쉴리는 빙긋이 웃는다. 이내, 잠잠히. 평소의 늘 보던 표정을 짓는다.
" 이제 좀 괜찮아 졌어? 샘. "
차츰 진정된 목소리가 나긋히, 서로를 오가다. 문득 새뮤얼이 묻는다. 그래, 이제는 해소됐다. 이 모든 것이 메이블 애쉴리의 짖궂은 어투로 인해 시작된 오해였다는 것을 말이다. 허나 챙겨갈 수 있는 것에 대해선 무슨 의미였는지에 대해 묻자- 메이블은 음? 하고 기억을 떠올리듯 고개를 기울인다.
이로 인해 알 수 있는 것이라면, 메이블에겐 그저 지나간 대화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주변을 더듬는다. 최근에 고른 문제 덩어리의 책들. 하나같이 공상과학, 이번에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자잘한 글귀들을 모아놓은 책들 중 메이블은 하나를 보인다. 이거야. 그러니까, 책 제목이 《우주 여행자를 위한 생존 필독서》 랬다. 순전히 공상 덩어리의 이야기들을 모아, 적절한 과학적 논리를 녹이고 모순들을 무시해 적어낸 책. ... 뭐, 그래. 이것도 메이블 애쉴리의 심심풀이 목록 중 하나로 발탁된 것이었고.
그 점에서 메이블은 만약 자신이라면, 따위의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새뮤얼은 안도라고 해야할지, 허탈함이라고 해야할지. 복잡한 감정이 마구 섞인 채, 세팅되지 않은 검은 머리카락을 마구 흐트렀다. 메이, 이 맹랑한... 하고 말 끝을 흐릴 즈음 그걸 지켜 보던 메이블은. 바보. 샘은 바보야. 일정한 톤으로 조곤히 놀려대며 지켜본다.
" 그럼 넌, 날 두고 우주로 갈거야? "
그 질문에, 대해. 메이블과 새뮤얼의 시선이 맞닿는다.
대답하지 않았다.
그야, 또다시 바보 같은 오해를 할 필요는 그 어느 쪽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보.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릴. 서로에게 자잘한 소리들을 던지면서,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푹 파고 들었다.
아, 그래. 오늘은 정말 잠이 잘 올 것 같은 기분이다.
두 사람 모두.
깊어진 밤, 새벽에 가까워진 하늘에 남은 별들이 이따금 반짝인다.
모처럼 함께 잠에 드는 밤이 있기에, 우리는 매일 밤. 매일 낮을 특별히 여기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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